BIOGRAPHY

film director
photography
scenarist

an Exhibition

Solo Exhibition

2010   TWIST RECORD, 갤러리 이룸 기획전. 서울
2009   B_S.S,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H center, 상설전.

           분절공간,Twist space, spacezip gallery. B  Seoul

           분절공간,Twist space, 관훈갤러리 S.S  Seoul

2006   no pile ; block,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빛 갤러리. 서울
        Sookmyung women’s university, Moonshin Museum


Selected Group Exhibition

2010   xyz city  영등포 타임스퀘어
2010  부평아트센터 개관 전 "나의 살던 동네". 부평
       2010 Bupyeong Arts Center Opening Exhibition

2007  막긋기 전. Drawn to Drawing 2, 소마 미술관. 서울
           SOMA Museum of ART. Seoul Korea.

2005  17X17 , 토탈 미술관. 서울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jangseop.com  

분절공간 TWIST SPACE 分節公間

박해천

우연한 기회에 남산 N 타워의 전망대에 올랐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마자, 급히 화장실로 향한 적이 있다. 갑작스럽게 심한 배뇨의 욕구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런데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뜻하지 않은 풍경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면 통유리창을 스크린 삼아 펼쳐진 서울의 파노라마적 경관이었다. 아마도 디자이너는 배뇨의 쾌감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화장실을 그렇게 연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소변기 앞에 서서 본 것은, 만물의 만물에 대한 무규칙 이종격투가 펼쳐지는 거대한 난장판의 스펙터클이었고, "아침에는 전근대이고 오후에는 근대이고 저녁에는 탈근대인"(신형철,『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43쪽) 곳에서 역사의 한나절을 보냈던 호모사피엔스들의 비루함과 무기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저곳이 내가 일상을 영위하는 도시라는 사실이 무참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각적 충격에 수그러든 배뇨의 욕구를 다시 자극해 오줌을 누는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를 바라보며, 내가 사는 도시 위에다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포자기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쾌감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던 듯하다. 최근 권력의 시선이 랜드마크에 집착하며 벌이고 있는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들을 보고 있자면, 이 시선 역시 자포자기의 절망감을 느꼈던 것 같다. 도대체 절망의 끝에서 몸부림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거대 건축물에 대한 과대망상적 욕망을 발설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 시선은, 고만고만한 인공물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이 쌈박질에 열중하고 있는 이 원형경기장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고질라 몇 마리를 투입하면, 일거에 질서과 안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듯하다. '사이즈'에 의한 제압과 평정. 사실 그 시선이 꿈꾸는 서울이란, 강박적으로 タ오와 열을 사랑하는 인공물의 삼청교육대인 셈인데, 적어도 그런 서울이라면, 남산 N 타워의 화장실에 들른 장삼이사들이 '보기에 참 좋다'라고 느끼며 배뇨의 쾌감을 극대화할 순 있으리라. 물론 공짜는 없다. 쾌감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 계산기를 두드리며 개발 수익에 열 올리는 부동산업자와 건설업체들이 군침을 흘리며 권력의 시선을 따라나서는 것 당연지사다.

인공물들의 열병식을 멋들어지게 연출한 CG 조감도를 둘둘 말아 팔에 낀 채 말이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도시로부터 내몰린다. 열성유전자의 보유 사실이 들통난 인공물들도 불도저에 밀려나간다. 이전투구의 형식으로나마, 그 사람들과 인공물들이 만들어냈던 공간은 한때 동네나 골목이라고 불렸을 테고, 비록 악다구니가 멈출 날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공동체로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나서서 연명치료를 권고하지 않는 암 덩어리에 불과하다.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말다툼은 더욱 첨예해지겠지만, "대의가 있다면 서른두 평, 혹 기개를 품은 남아라면 쉰 평 정도"(박민규,「절龍龍龍龍」,『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009, 227쪽)를 꿈꾸는 주상복합적인 욕망의 세찬 폭풍우 앞에선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다.  여기에 난데없이, 애잔한 감정을 애호하는 노스탤지어의 소비자들이 등장하면, 상황은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DSLR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벤야민의 산보객을 흉내낼 줄 아는 이 소비자들은 그 공간에 퇴적되어 있는 시간의 지층들이 이제 곧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공동체의 자취와 사람의 냄새를 기록하려고 거리를 쏘다닌다.

그들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열성유전자의 보유자와 보유물, 그리고 그들의 공간에 존엄사를 선고하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셈이다.  이장섭은 이들 사이에서 독특한 자리를 점유한다. 개발업자라면, 멀리서 그리고 높은 곳에서 이 공간을 응시하기 위해 조감의 투시도적 시선을 빌릴 것이고, 노스탤지어의 소비자라면 추억의 몽타주를 위해 튼튼한 두 다리를 밑천 삼아 거리를 향해 관음증적 시선을 건넬 것이다. 창공의 시선과 거리의 시선, 이장섭은 이 두 시선과는 거리를 둔 채,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낯선 골목들을 서성거리다가, 자신의 감각이 반응하는 지점을 포착하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적절한 높이의 건물을 찾고, 그 건물의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5층과 10층 사이, 어딘가의 적절한 위치에 삼각대를 세우고 그 위에 다게르 타입의 카메라를 얹어 놓는다. 그곳은 민생 탐방에 나선 유명 정치인의 보호 임무를 맡은 경찰특공대의 저격수라면 충분히 선호할 만 높이인데, 또한 이장섭이 감정을 탑재하지 않은 채 이 공간을 바라다볼 수 있는 안성맞춤의 높이이기도 하다. 이 정도 높이라면, 낭만 과잉의 정서가 뜨겁게 흘러내리는 산보자의 시선도, 투기적 이윤 창출에 눈이 멀어버린 조감의 시선도 외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의 사진에선 길도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지고, 그리하여 욕망도 사라진다. 그 대신에 남는 것은 공간의 표면들, 다시 말해 서울 구도심의 인공물들이 생을 걸고 만들어낸 도시 공간의 표면들이다. 아마도 건축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쯤에서 건축사가 지그프리트 기디온의 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즘 건축은 기하학의 논리로 정교하게 세공된 표면들의 접합체를 추구해야 했다. 그는 현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건축물에, 엔지니어의 합리성과 건축가의 미학을 겸비한 최고수 검객의 칼솜씨가 스며들어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때의 표면이란, 모더니스트 건축가가 신의 경지를 넘나들며 단 일합으로 잘라낸 매스의 절단면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장섭의 표면은 이와는 다르다. 신이 사라진 인간들의 세속 도시, 폭주적인 근대화와 개발의 논리가 난파시켜버린 공간들의 장소, 그곳에서 연원을 달리하는 건물의 표면들이, 높이가 천차만별인 수직의 기둥들에 의지해 중력을 견디며 둥둥 떠다닌다.

이장섭이 카메라의 시선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표면들이다. 그는 독특한 감각의 레이더로 이 표면들의 조난 신호를 감지하고 계단을 밟고 오른다.  그리고 이 과정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그의 프레임 내부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위태로운 기울기로 서로 기대서 있던 표면들이 이장섭의 독특한 눈높이 덕분에,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듯 제각각의 색채와 질감을 발산하며 입체적인 패치워크를 행하기 시작한다. 한옥 기와와 간이 천막, 전신주와 슬레이트 지붕과 "21세기"라는 간판과 에어콘 외장 등의 표면들이 리좀적인 방식으로 세포분열하면서 서로 뒤엉킨 채 다닥다닥 접합되어, 무한 다면체의 형상을 표출하는 것이다. 종종, 기디온이 사랑했을 법한 커튼월의 현대적 건축물들이 그 배후에 자리 잡곤 하는데,프레임 바깥으로 끝없이 증식하고 있을 무한 다면체의 사이즈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들은 오히려 위축된 모습으로 벽화의 정물처럼 그냥 그렇게 오두카니 서 있다. 그것들은 그저, 다면체의 표면들이 제 시간성을 반추해보는 볼록 거울이자, 제 지리적 위치를 확인해보는 이정표로, 그리고 소실점으로 향하려는 관객의 눈길을 가로막는 바리케이트로 제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건조하게 장면화함으로서 이장섭이 목표로 삼은 것은 무엇일까? 도시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는 그의 의도는, 기묘한 리듬의 공간 질서를 토해내는 도시-표면들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xyz city

‌이영준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점점 더 도시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도시가 나빠서도 아니고, 도시에 살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도시의 공기가 나빠서도 아니었다. 차와 관광객이 잔뜩 몰려 복작대는 울릉도 도동항의 공기가 종로 한 복판의 공기보다 나쁘면 나빴지 결코 더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도시가 우리에게 가하는 밀도였다. 단지 차가 많다거나 빌딩이 너무 많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이 놈의 도시는 매일 같이 엄청난 정보를 쏟아내 좋건 싫건 우리에게 퍼부어 주고 있었다. 물론 이동성 통신이 발달한 요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느 시골에 가도 도시 못지 않게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에 있는 모든 물건들, 즉 차, 건물, 구조물, 각종 사인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너무나 다양하고 착종적인 스타일의 옷들, 음식들은 모두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미래의 고고학자가 오늘날의 도시를 발굴한다면 단 하나의 유물에만 해도 너무나 많이 담겨 있는 정보 때문에 당혹해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논문 쓸 거리가 많다고 좋아할 지도 모른다. 신라시대의 능을 발굴하다가 불에 탄 쌀알이 나오면 고고학자는 '신라시대에 쌀을 먹었음'이라고 간단하게 기술하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식당터를 발굴하던 미래의 고고학자가 거기서 출토된 메뉴를 보게 되면 쌀도 그냥 쌀이 아니라 리조또, 프라이드 라이스, 찰밥, 누룽지 등 다양한 형태로 된 것들이 나올 것이며, 그에 맞는 건축양식도 같이 나오게 될 것이다. 허름한 토속식당에서 리조또가 나올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리조또를 먹는 곳은 대개 건물의 외관과 내관이 서양식으로 세련되게 디자인돼 있다. 그러니 미래의 고고학자는 오늘날의 도시를 발굴할 때 거기 살던 사람은 어떤 건축양식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고 거기서는 어떤 언어가 통용되는지 연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조또를 먹는 곳에서 "아줌마 여기 술 좀 더 주슈"하고 소리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도시는 이렇게 정보로 넘쳐난다. 만약 그 고고학자가 건물 전체를 발굴한다면 그는 박사논문을 수 십 편을 쓰고도 남을 것이다. 일층에는 편의점, 이층에는 치과, 삼층은 당구장, 사층은 까페, 오층은 안마시술소 등등으로 돼 있으니 그 각각의 층에서 하는 일들의 본질과 그 실행방식들, 거기 얽혀 있는 문화적 층위와 관습, 오는 사람들의 이념과 감각 등 도대체 건물 하나가 들이붓는 정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데 종로 하나만 보더라도 빌딩이 한도 끝도 없이 줄지어 있다. 이래서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들은 정보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도시는 그 욕망을 맹렬히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정보가 추상적인 데이터로 돼 있으면 무시하면 그만인데 매일 같이 건축물의 형태, 그 사이를 비추는 햇살, 건물과 건물이 얽혀서 나타내는 추상적인 아름다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천변만화의 모습 등, 신체적이고 실존적이며 감각적으로 다가오니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들이 나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이 도시를 샅샅이 사진으로 기록해서 실존과 욕망의 착종을 풀어내는 살풀이를 하자고 말이다. 사진은 기록도 아니고 표현도 아니며 예술은 더더욱 아니다. 사진은 외부조건이 자신에게 가하는 압력에 대응하여 건딜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마치 동물이 위협을 받으면 독을 뿜듯이, 사진가는 사진을 내뿜어서 도시의 스트레스에 대적한다. 이때 '선생님의 사진 스타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것은 풍뎅이에게 '당신의 날개짓은 누가 고안한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질문이다. 풍뎅이는 자연이 자신에게 부여한 본능에 따라 날개짓을 하는 것이다. 그 구조는 풍뎅이가 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정하는 것은 자연의 힘과 풍뎅이의 실존 사이의 어떤 관계이다. 그 사이에 공기역학도 있을 것이고 운동생리학도 있을 것이며 곤충심리학도 있을 것이다. 사진가는 도시가 자신에게 부여한 힘과 정보와 감각의 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는 발터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대하여"에서 말해 유명해진 할 일 없는 산보자, 즉 플라느(flaneur)와도 다르다. 오늘날의 사진가는 이놈의 도시를 어떻게 처리하고야 말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벤야민의, 혹은 보들레르의 플라느가 할 일 없이 산보함으로써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군중들의 저 끔찍한 욕망과 목적성, 나아가 맹목적성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데 반해, 오늘날의 도시 사진가는 도시 속에 푹 자신을 담근다. 그는 도시의 구조 속에서 자신만의 사진실천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을 잘 살펴 찾고, 무슨 사진을 펼칠지 가늠해 본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사진가는 산보자 보다는 낚시꾼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고 기다릴 줄 안다. 도시는 아무 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참을성을 가지고 참을 수 없는 도시를 보아낸다. 그리고 사진으로 처리해 낸다. 그 결과가 『XyZ City』이다. 3차원 공간을 이루는 축은 xyz 세 개가 있는데, 한국의 도시에서는 단연 z축이 가장 압도적이다. 오로지 수직 상승을 꿈꾸는 한국의 도시에서는 x축과 y축이 만들어내는 평면의 좌표는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z축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도시인들은 이런 엄청난 공간의 불균형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이 일을 하고 휴식을 하고 번식을 한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의 도시들이 다이내믹해서 좋다고 하는데 약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좀 아찔하고 아슬아슬하다. 현기증이 나지 않을까, 옥상에서 누군가 뛰어내리지 않을까, 정보의 과잉은 일어나지 않을까. 도시의 z축은 상당히 바쁘다.

사진가들의 탐구심 어린 카메라는 이런 도시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도시의 축들이 만들어 놓은 궤적을 따라간다. 사실 도시는 무척이나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기 힘들다. 도시를 찍은 대표적인 사진가가 1930년대의 뉴욕을 찍어 『변화하는 뉴욕(Changing New York)』이라는 제목의 책을 낸 버레니스 애봇(Berenice Abbott)일텐데, 그녀의 카메라는 도시를 훑어 볼 수 있는 지점에 올라가 매우 요약된 방식으로 뉴욕의 스펙터클을 정리해내고 있다. 그녀가 찍은 뉴욕은 수평의 좌표축과 수직의 좌표축이 매우 다이내믹하게 얽힌 매력적인 공간이다. 위지의 사진에 나오는 살인 사건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멋진 근대의 공간이다. 그녀의 사진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이 맨하탄의 빌딩을 찍어서 아주 길게 세로로 만든 사진이다. 근대적 빌딩의 늘씬한 선은 이 사진 속에서 생동한다. 이 사진에서 도시는 z축이 살아 숨 쉬며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공간이며, 그게 뉴욕의 매력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사진가는 도시의 z축에 반응한다. 어떤 이는 나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수직으로 치솟는 x축에 대한 반대급부로 x, y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압살당하고 있나 힘겹게 사진 찍었다. 마치 숲속의 나무들 사이에 싸움이 나서 참나무와 물푸레나무들은 다 멸종하고 독을 뿜는 소나무만이 독야청청하여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도시의 z축은 다른 축들의 희생 위에 버티고 서 있다. 벤야민이 ‘문명의 기록 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x, y축의 희생 없이 이루어진 z축의 발전은 없다. 나날이 위세를 떨쳐 가는 z축은 자연의 한계에 도전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높이가 300미터가 넘는 오늘날의 사치급 주상복합 건물은 실제로 구름 보다 높이 서 있는 경우도 있다. 무슨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 z축의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사진은 표상을 통해 경고한다. 너 너무 높이 올라갔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에게는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의 도시가 바벨탑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런 경고의 모습은 서울에서만 아니라 부산에서, 탄광촌에서, 교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섬을 메워 만든 신도시에서 다 발견된다. 사진가는 그것을 너무 일찍 보아버린 걸까. 우리는 사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Z축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아예 헬리콥터를 타고 높이 놀라가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구조물의 xyz축이 없이 오로지 빈 공간만 있는 하늘에서 보면 구조물이 가진 xyz축들은 다 앙증맞은 시각적 기호로 변해 버린다. 그 높이에서는 도시가 가하는 일상적 스트레스는 보이지 않는 반면에 도시 전체가 이루고 있는 지형의 관상(physiognomy)이 드러난다. 거기서는 매연도 안 느껴지고 차도 안 밀리고 사람들이 싸우지도 않는다. 그 대신, 영등포구 혹은 서초구라는 관상이 드러난다. 그것은 땅위에서 사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잠재해 있는 어떤 것이다. 옛날의 철학자나 심리학자는 어떤 사태의 이면을 탐구하기 위해 상징이나 내면, 근원형상 등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공간으로 들어갔지만 오늘날의 도시 사진가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로 올라간다. 거기에 도시의 본질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XyZ축에 시간의 축을 더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사진가도 있다. 1970년대의 서울은 Z축이 다른 축들을 막 압도하기 시작한 때였는데, 이때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밭을 갈고 진흙바닥을 걸어 다녔으며 큰 길에서 축구를 했다. 흡사 그들은 오늘날의 도시와 완전히 다른 도시에서 살았던 것 같다. 물론 1970년대의 도시는 오늘날의 도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에는 스타벅스도 와이파이도 YF쏘나타도 악플도 없었다. 그 자리에 '1970년대'가 큼지막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독재가가 호령하고 인권이란 말은 외국어였던 1970년대가 말이다. 그런 도시의 생존자가 자신의 생존의 수단으로 자랑스럽게 내놓은 것이 그때의 사진이다. 그는 1970년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2010년을 위해 1970년대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그 과일이 익어서 딸 때가 됐다. 1970년대는 이제야 익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야 우리는 그때를 독재의 시대라고, 근대화의 성장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을 통해.

그런데 도시는 꼭 밖으로 나가서 힘들게 사진으로 찍어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가? 이미 도시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있다. 사실 도시는 건물이나 도로 같은 물질적인 것들의 집합체일뿐더러 정보와 기호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도시를 살아간다는 것은 물질적인 사물의 질서를 따른다는 것도 되지만 정보와 기호를 읽고 따르는 것도 포함한다. 그리고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정보와 기호의 위력은 날로 커간다. 교통신호등이나 고층건물의 냉난방, 방범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의 근육이나 부릅뜬 눈의 명령이 아니라 정보의 명령이다. 그런 정보들이 스마트해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무장해 가는 요즘 도시의 네트웍은 더 이상 종로, 을지로, 청계천, 몇 번 버스, 지하철 몇 호선이 아니라 와이파이,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이 되간다. 도시는 점점 탈물질화 되어 가고, 도시의 표상도 도시의 길거리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는 사이버 공간에 둥둥 떠있다. 그 정보의 표상이 아무데나 착륙하면 그게 우리의 정보 단말기이다. 단말기는 걸어다니므로 도시의 표상도 우리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게 오늘날 인간과 도시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잡으면 그게 서울의 모습이다. 그래서 어떤 사진가는 정보 공간에 있는 도시의 모습들을 채집하여 도시의 표상으로 내놓기도 한다.

이제 도시가 좀 참을만 해졌는지? 도시는 매력적이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우리는 도시의 공기가 나쁘고 인심은 사납고 범죄가 들끓고 환경이 안 좋다고 투덜대면서도 도시의 교육과 쇼핑과 문화를 쫓아 꾸역꾸역 몰려든다. 사람들은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이 흉하다고 하면서도 비싼 돈을 주고 사고, 차가 많아서 죽겠다면서도 비싼 돈을 주고 차를 사서 도시에 끼어든다. 도시는 분명 스트레스의 온상인데도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의 한가운데로 몰려든다. 아무리 맑은 자연을 묘사한 예술작품이라도 그것이 소통되는 공간은 도시이다. 설악산 마등령 사진을 찍어서 마등령에 걸어놔 봐야 빛이 안 난다. 1930년대 미국의 남부 시골의 참상을 찍은 사진도 뉴욕, 시카고, 엘에이 등의 도시에 전시됐지 그 시골에 전시되지 않았다. 사업도 금융도 범죄도 문화도 다 도시에서 일어난다. 도대체 도시가 무엇이길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자석 노릇을 하는 걸까. 그런 점에 대해 사진을 통해 알아보자는 것이 『XyZ City』라는 전시의 목적이다. 이제는 슬슬 도시를 떠나도 될 것 같다.